[용어로 보는 IT 2015 개정판]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비디오 게임기 시장은 일본의 닌텐도(Nintendo)사가 주도하고 있었다. 특히 1983년에 출시된 닌텐도 패밀리컴퓨터(Family Computer, 북미명 NES)와 1990년에 출시된 닌텐도 슈퍼 패미컴(Nintendo Super Famicom, 북미명 슈퍼 NES)은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며 닌텐도의 위상을 굳건히 유지해주었다. 당시 패미컴 및 슈퍼 패미컴과 같은 닌텐도 게임기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장 매체로 반도체 기반의 롬(ROM) 카트리지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이 롬 카트리지는 게임기에 꽂기만 하면 간단히 실행이 가능하며, 데이터를 읽는 속도가 빨라서 막힘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롬 카트리지는 저장 용량이 부족하고 가격도 비싼데다가 대량 생산도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었고,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700MB 가량의 대용량을 담을 수 있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CD-ROM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세가(Sega)나 NEC와 같은 닌텐도의 경쟁사에서는 1990년을 즈음해 CD-ROM 기반의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닌텐도의 시장 점유율이 워낙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시장의 중심은 여전히 롬 카트리지로 유지됐다.
1994년에 출시된 소니의 독자 규격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와 소니의 합작 프로젝트 - ‘플레이스테이션’
물론 닌텐도 역시 롬 카트리지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90년을 즈음해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를 출시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 장치의 개발은 당시 닌텐도와 친밀한 관계였던 소니(Sony)사에서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의 개발 코드명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었다.
닌텐도와 소니가 합작해 개발하던 플레이스테이션의 시험 제작 모델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는 비디오 게임 시장 진출을 노리던 소니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닌텐도와 소니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다. 당시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개발사들과 라이선스를 맺고 슈퍼 패미컴용 롬 카트리지를 독점으로 위탁 생산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CD-ROM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 권리는 이 장치를 개발한 소니 측이 보유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닌텐도는 이를 껄끄럽게 여겼다. 결국 1992년, 닌텐도는 소니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네덜란드의 필립스(Philips)사와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를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이후 개발이 취소되어 나오지 않게 되었다.
CD-ROM과 3D 그래픽 성능 앞세운 소니의 독자 규격 게임기
닌텐도에게 배신당한 소니는 방향을 바꿔 독자적인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1993년에 소니는 비디오 게임기 전문회사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1994년에 첫 제품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했다. 1994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은 개발이 중단된 슈퍼 패미컴용 CD-ROM 확장 장치의 코드명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닌텐도와는 상관 없는 독자 규격의 비디오 게임기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닌텐도의 게임기와 달리 CD-ROM을 저장 매체로 채용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고품질의 영상과 음향을 구현할 수 있었고, 소프트웨어의 판매 가격도 큰 폭으로 낮출 수 있어 소프트웨어 개발사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환영 받았다. 또한 당시 워크스테이션(work station: 전문가용 컴퓨터)에 쓰이던 고성능 32비트 프로세서인 ‘R3000A’를 탑재해 경쟁사 제품들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참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이란 명칭은 놀이를 뜻하는 ‘play’에 전문가용 컴퓨터를 뜻하는 ‘work station’을 합친 것으로, 놀이에 특화된 컴퓨터, 혹은 워크스테이션급의 성능을 가진 게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본체와 동시 출시된 [릿지레이서] 등의 게임들은 플레이스테이션의 3D 그래픽 성능을 강하게 어필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전용 CD-ROM 소프트웨어는 디스크 아랫면이 검정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출시를 즈음해 세가, 3DO, NEC 등도 CD-ROM 기반의 32비트급 비디오 게임기를 내놓고 소니와 경쟁했지만 3D 그래픽 성능이나 마케팅 능력이 소니에 미치지 못해 결국 패배했다.1996년에는 닌텐도가 64비트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형 게임기인 닌텐도64(Nintendo64)를 내놓았으나 여전히 저장 매체는 롬 카트리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때문에 고성능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행하던 동영상과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갖춘 게임을 제작하기가 힘들었고, 이는 곧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의 이탈로 이어졌다. 이 때를 즈음해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은 닌텐도에서 소니로 넘어가게 되었고, 플레이스테이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후속 모델이 나온 2000년 이후에도 계속 생산 되었으며, 일본 내 판매가 중단된 2004년까지 세계 시장에 총 1억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운다.
DVD 앞세운 플레이스테이션 2, 인기를 이어가다
2000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2는 DVD 구동 기능을 갖췄다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소니는 2000년, 후속 모델인 ‘플레이스테이션 2’를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이전 모델보다 3D 그래픽 처리 능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당시 VHS 비디오 테이프를 대체하는 가정용 비디오 매체로 각광 받던 DVD를 기본 저장 매체로 채택했다.
플레이스테이션 2는 기존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별도의 DVD 플레이어 구매 없이 DVD 영화를 보고자 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어 역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세계적으로 1억 5천만대가 넘게 판매되었다.
소니의 휴대용 게임기 진출작,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
거치형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소니는 여전히 닌텐도의 아성으로 남아있던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2004년,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laystation Portable)’을 출시했다. PSP라는 약자로 더 많이 알려진 이 기기는 플레이스테이션 2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 프로세서와 1.8GB의 대용량을 담을 수 있는 전용 디스크인 UMD(Universal MediaDisc)를 채택해 거치형 비디오 게임기 못지 않은 고품질의 멀티미디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메모리카드를 꽂아 동영상이나 음악을 저장, 감상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춰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PSP는 2011년까지 7천만대를 판매하는 등 상당히 선전했지만, 이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쟁기종인 ‘닌텐도 DS’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에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플레이스테이션 3의 등장 이후 바뀐 시장구도
2006년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3는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를 지향했다
플레이스테이션 2로 거치형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고 PSP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일정 영역을 확보한 소니는 2006년, 플레이스테이션 2의 후속모델인 ‘플레이스테이션 3’를 내놓았다. 플레이스테이션 3는 CD, DVD에 이은 차세대 광 디스크인 블루레이(Blu-ray) 디스크를 채택하고 셀(Cell)이라고 하는 신형 프로세서를 탑재해 HD(High-Definition)급의 고품질 게임 및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인터넷 접속 기능 및 대용량 하드디스크도 갖추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다만, 플레이스테이션 3는 단순한 게임기가 아닌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를 추구한 결과,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본체 가격이 비싸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성능 자체는 1년 전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Xbox) 360과 큰 차이가 없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 받았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기인 위(Wii)가 고성능 대신 독특한 조작 방법을 내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플레이스테이션 3는 이전 제품들과 같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비디오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와 소니,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3사가 경합을 벌이는 구도로 바뀐다.
새로운 조작 방법을 내세운 플레이스테이션 비타
그리고 2011년에는 PSP의 뒤를 잇는 휴대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비타(PlayStationVita, PS비타)가 출시되었다. PS비타는 PSP의 특징을 이어받아 플레이스테이션 3와 같은 같은 시기의 거치형 비디오 게임기 수준의 게임을 구현할 수 있으며, 멀티미디어 감상 기능도 충실한 편이다.
이와 함께, UMD와 같은 광 디스크 대신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전용 저장매체인 ‘PS 비타 카드’, 혹은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또한, 본체 앞면에 터치스크린, 뒷면에는 터치패드를 탑재해 새로운 조작 방식을 구현한 것도 특징이다.
다시 왕좌를 차지한 플레이스테이션 4
2013년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4는 게임 실행이라는 비디오 게임기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
플레이스테이션 3의 부진을 겪은 소니는 2013년 이를 만회할 후속 모델 ‘플레이스테이션 4’를 출시한다. 플레이스테이션 4는 종합 멀티미디어라는 전작의 콘셉트를 포기하고 비디오 게임기의 본분인 게임에 충실한 제품이었다. 셀 대신 AMD의 범용 프로세서와 그래픽 프로세서를 탑재해 게임 개발사들이 한층 쉽고 빠르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8GB라는 대용량 그래픽 메모리를 채택해 경쟁 기기인 엑스박스 원보다 한층 뛰어난 품질의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다. 소니의 선택은 주효했다. 플레이스테이션 4의 고성능을 활용한 양질의 게임이 출시됐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시장조사기관 IHS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플레이스테이션4는 3,400만 대 판매될 것으로 예측된다. 경쟁 기기인 엑스박스 원이 2,000만 대 정도 판매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8세대 비디오 게임기 전쟁에서 소니가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플레이스테이션 4는 SNS와 1인 방송 기능을 내장한 것이 특징이다. 게임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이를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친구와 공유할 수 있다. 트위치나 유스트림을 통한 1인 게임 방송도 지원한다. 고가의 캡처보드를 구매하지 않아도 1인 게임 방송을 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연결해 가상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체험형 기기 ‘프로젝트 모피어스’
현재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연동되는 가상현실 기기 ‘프로젝트 모피어스’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가상현실 게임을 투입해 플레이스테이션 4를 가상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기로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 모피어스는 2016년 상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