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로 보는 IT 2015년 개정판] 항해 시 꼭 챙겨야 할 물건은 나침반과 해도(海圖)다. 뱃사람들은 망망대해를 건널 때 이 두 가지 물건에 목숨을 맡겼다. 망가지거나 분실한다면 아무리 크고 좋은 배라고 할지라도 길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베니스 해상 무역의 번영도 이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수백 년간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었던 나침반과 해도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IT기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자동항법장치, 다른 말로 내비게이션(navigation system)이다. 오늘날 내비게이션은 선박, 항공기, 자동차 등 다양한 이동 수단에 두루 사용되지만, 여기에서는 내비게이션의 범주를 자동차 내비게이션(automotive navigation system)에 국한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비게이션의 역사
자동차 내비게이션(이하 내비게이션)은 운전자가 낯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경로를 탐색하는 장치다. 최초의 내비게이션은 일본의 자동차업체 혼다(Honda)가 1981년 개발한 ‘일렉트로 자이로케이터(Electro Gryrocator)’로 자이로스코프(3개의 축을 통해 회전체가 어떤 방향이든 자유롭게 가리킬 수 있는 장치)와 필름 지도를 사용한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혼다의 일렉트로 자이로케이터(왼쪽), 여기에 사용된 필름 지도(오른쪽) <출처: 혼다 홈페이지(http://world.honda.com/history/challenge/1981navigationsystem/index.html)>>
1985년에는 미국 자동차용품업체 이택(Etak)이 최초의 전자식 내비게이션 ‘이택 내비게이터(Etak Navigator)’를 발표했다. 이 내비게이션은 전자 나침반과 바퀴에 달린 센서로 작동했다. 초창기 내비게이션들은 가격이 비쌌고 정확도도 낮았다. 내비게이션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미국이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을 전면 개방한 2000년부터다. GPS란 GPS 위성의 신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항법시스템이다. 미국은 1970년대 군사목적으로 24개의 GPS 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2000년부터 민간에서도 GPS 위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민간용 코드를 개방했다.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GPS 내비게이션 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에 현대오토넷을 통해 자동차 매립형 제품이 첫 출시됐으나, 비용문제로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 가격을 낮춘 내비게이션 전용 단말기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붐을 이루었다.
내비게이션의 구성
내비게이션은 크게 소프트웨어인 전자지도와 하드웨어인 단말기로 구성된다. 지도 제작업체가 만든 전자지도를 단말기 제조업체가 받아서 탑재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다른 기종의 제품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전자지도를 쓰는 경우가 많아 단말기에 비해 전자지도의 종류가 적다. 팅크웨어의 아이나비맵, 현대엠앤소프트(구 만도)의 맵피/지니, 파인디지털의 아틀란이 대표적인 전자지도다. 초창기 전자지도만 제작하던 지도 제작업체들도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 단말기를 출시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정확성은 전자지도에 따라 판가름난다. 따라서 내비게이션 선택에 있어서 어떤 전자지도를 탑재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무조건 용량이 크고 자세한 지도가 좋은 지도는 아니다. 해외에 비해 변경이 잦은 국내 도로 상황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전자지도 제작업체들은 GPS 수신기를 장착한 차량을 통해 주기적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해 변경된 부분을 지도에서 갱신한다. 지도가 수정되면 사용자는 CD롬이나 USB 메모리와 같은 저장매체를 이용해 갱신된 지도 데이터를 내비게이션 기기로 옮겨야(업데이트) 한다. 이 업데이트를 게을리하면 지도의 정확성이 떨어져 잘못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단말기의 중요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단말기의 성능이 낮으면 전자지도를 100% 반영하지 못한다. 구형 내비게이션에는 지도 업데이트가 중단되기도 한다. 좋은 지도를 쓰고 싶으면 거기에 걸맞은 단말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특히 내비게이션 단말기는, PC 처럼 부분 업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말기 구입시 연식, 사양, 지원 기능을 꼼꼼히 따져보는게 좋다.
단말기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부가기능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비게이션은. DMB 방송 수신, 동영상 재생, MP3 재생, 게임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멀티미디어 종합 기기로 거듭났다. 특히 DMB 기술을 도입하면서 실시간 교통정보 수집도 가능해졌다. DMB 방송망을 이용해 교통정보를 내려받는 기술표준인 TPEG(Transport Protocol Expert Group)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탐색해 최단거리 코스로 주행할 수 있다. 또한 경로 비교, 관심 지역 정보, 사고 정보, 생활 정보 등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며 감시카메라 업데이트도 가능하다.
시대에 따라 내비게이션도 진화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내비게이션도 진화 중이다. 교통정보와 길을 안내하고, 간단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무선통신’이 있다. 와이파이 데이터를 전송 받음으로써,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 가능해졌다. 방송망을 통해 내려 받는 것보다 더 큰 데이터를 수신할 수 있어 그만큼 표현하거나 보여줄 수 있는 방법도 늘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실시간 교통정보 대응 길찾기다. 데이터를 끊임없이 주고 받으면서 교통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최적화된 길을 찾아 주는 것이다. 일부 내비게이션은 빅데이터 정보를 반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분석해 시간과 요일, 날짜 등에 맞춰 운전자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게 돕는다.
단말기 성능이 고성능 스마트폰 수준으로 향상되고 이에 맞춰 무선통신을 수신하게 되면서 달라진 것도 있다. 바로 '지도'다. 과거 그림으로 표현되던 것이 3D 그래픽으로 진화한 것이 최근 내비게이션 형태라면 이제는 이보다 더 정밀한 항공촬영 이미지와 3D를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차량에 많이 탑재되는 블랙박스 등과 연동해 최신 차량에 쓰이는 최신 기술도 자연스레 구현되기도 한다. 증강현실로 목적지 주변 지역의 정보나 명소 등도 안내할 정도로 진화했다. 일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된 단말기는 별도의 앱을 설치해 확장성을 넓히기도 한다.
구입시 체크포인트는?
내비게이션 구입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지도를 찾는 일이다. 업체마다 전자지도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개인별로 선호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화면을 비교해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때 지도의 업데이트 주기도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국내 지도 업체들은 2개월에 한 번 꼴로 업데이트를 실시하지만 일부 외산 지도는 업데이트의 주기가 길어 정확도가 떨어진다. 출장 등으로 낯선 곳을 방문할 일이 많은 사용자라면 업데이트가 빠른 내비게이션이 적합하다.
지도 보는 법이 서툰 사람들은 3D 내비게이션이 답이다. 단, 수도권 거주자나 지방에 거주하더라도 수도권에 방문할 일이 많은 사용자만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아직 3D 구현 지역이 지방까지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3D 지도 업데이트는 유료인 경우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도별로 제공하고 있는 특화서비스도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면 낚시가 취미인 사용자와 골프를 좋아하는 사용자, 등산을 좋아하는 사용자에게 딱 들어맞는 지도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지도는 전국 17,000여 개의 낚시터 정보가 담겨있고, 어떤 지도는 19개 국립공원의 자원정보 검색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어떤 지도에는 전국 250여 개의 골프장 정보가 들어 있다.
단말기의 형태도 고려해야 한다. 단말기는 설치 위치에 따라 매립형(일반적으로 자동차 센터페시아 쪽에 장착)과 거치형(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거치)으로 나뉜다. 차량 미관을 중시하는 사용자에게는 매립형 내비게이션이 좋다. 매립형의 장점으로는 일체감을 꼽을 수 있다. 차량 환경에 최적화됐기 때문에 차량과 정보가 연동될 뿐 아니라 미관상 보기 좋고 내구성도 강한 편이다. 다만 거치형 제품보다 비용은 높은 편이다. 거치형 내비게이션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과 탈착이 쉽다는 점이 앞선다. 여러 차량을 옮겨 타야 하는 사용자에게 어울린다. 하지만 거치대를 달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고 주행 중 분리되면 교통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최근들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서도 내비게이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앱스토어에서 지도 앱만 구입하면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나에게 맞는 지도와 단말기 형태를 선택하라
각각의 내비게이션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내비게이션이 가장 좋다고 잘라 말하긴 힘들다. 무턱대고 값싼 제품이나 비싼 제품을 고르거나 남의 이야기에 의지해 구입하는 것은 우매한 행위다. 여러 조건을 따져보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내비게이션을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내비게이션이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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