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이상우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는 남부의 도시 새너제이(San Jose)를 중심으로 수많은 IT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우리에게 '실리콘밸리'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실리콘(규소)이 주 재료인 반도체 제조사가 이 지역에 많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만, 현재는 각종 첨단 기술의 보고(寶庫)이자 벤처 기업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수도라고 불리는 새너제이 <출처: 위키백과>>
인텔, 엔비디아, AMD, 삼성반도체(미국지사), SK하이닉스(미국지사) 등의 반도체 기업은 물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시스템즈 등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업, 구글, 야후, 이베이 등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까지 오늘날 IT업계의 주축을 이루는 기업 대부분이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다.
<실리콘밸리 입주 기업 <출처: (cc) Dimitar Krstevski at flickr.com>>
그런데 이런 실리콘밸리의 역사가 허름한 차고에서부터 시작됐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스탠포드 대학교 동기인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Palo Alto)의 한 차고에서 음향 발진기(Audio Oscillator)를 내놓으면서 실리콘밸리 1세대 벤처 기업인 HP의 역사가 시작된다.
<윌리엄 휴렛 (William Hewlett, 1913. 5. 20. ~ 2001. 1. 12.)(왼쪽)과 데이비드 팩커드 (David Packard, 1912. 9. 7. ~ 1996. 3. 26.)(오른쪽) <출처: computerhistory.org>>
데이비드 팩커드는 1912년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에서, 윌리엄 휴렛은 1913년 미시건 주 앤아버에서 태어났다. 이 둘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1934년 처음 만나고 친구가 된다. 데이비드 팩커드는 졸업 후 뉴욕에 있는 GE(General Electric)에서 잠깐 일하지만, 1938년 다시 스탠포드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교수였던 프레드릭 터먼의 권유로 벤처 기업에 도전하게 된다.
당시 실리콘밸리(물론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이후다) 주변에는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 지역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다. 프레드릭 터먼은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학교 주변에 연구단지를 조성한다. 또한 그가 직접 지도한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에게 창업을 권유한다.
<휴렛과 팩커드의 지도교수였던 프레드릭 터먼 <출처: 위키백과>>
1938년 휴렛과 패커드가 자리잡은 곳은 팔로알토 에디슨 거리의 한 차고였다. 당시 데이비드 팩커드는 신혼으로, 부부가 함께 살 집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월 45달러의 조건으로 괜찮은 집을 마련했고, 여기에 딸린 차고가 HP의 첫 공장이자 사무실이 됐다. 자본금은 교수에게 빌린 538달러가 전부였으며, 그들의 장비는 데이비드 팩커드가 사용하던 중고 드릴프레스(수직으로 구멍을 뚫는 공구) 정도가 전부였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변변찮은 공간이었지만 휴렛과 팩커드가 시제품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터먼 교수 역시 그들의 작업과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팔로알토 의료 센터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납품해 돈을 모았고, 이 기간에 팩커드의 부인이 스탠포드 대학교 교무처에 근무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다.
<휴렛과 팩커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차고 <출처: 구글 지도>>
1938년 회사를 세우고 처음으로 개발한 제품은 200A라는 이름의 오디오 발진기(특정 음역의 주파수를 생성하는 테스트 장비)로, HP의 첫 번째 제품군이다. 당시 이러한 기기의 가격은 500달러 내외였는데 휴렛은 회로를 단순화하는 방법을 통해 성능을 개선하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HP 200A에 관심을 보인 것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휴렛과 팩커드는 기존 200A를 개량해 200B를 내놓았고, 월트 디즈니는 1940년 제작한 영화 환타지아의 사운드 모니터링에 이 장비를 사용했다.
그들은 회사 이름을 휴렛-팩커드로 할지, 팩커드-휴렛으로 할 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름을 공정하고 보편적인 방법인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다. 후문에 따르면 데이비드 팩커드가 이겨서 팩커드-휴렛이 돼야 했지만, 팩커드는 휴렛-팩커드가 더 마음에 들어 HP로 결정했다고 한다.
1940년에는 창고를 벗어나 그럴듯한 사무실로 이전한다(현재 이 건물은 내비게이션 판매점이 됐다). 한편 캘리포니아 주는 1989년에 HP가 탄생한 에디슨가 367번지의 허름한 차고를 '실리콘밸리의 발상지'로 명명하며 사적으로 등록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기업으로 말미암아 과수원이 가득하던 산타클라라 계곡(캘리포니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계곡으로, 실리콘밸리는 규소와 산타클라라 계곡의 합성어다)이 IT 업계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팩커드가 살던 집 앞에는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라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집 뒤로는 창고가 보인다. <출처: 구글 지도>>
윌리엄 휴렛은 1941년에 미 육군에 자원해 1947년까지 복무하고, 데이비드 팩커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땐 회사를 혼자서 이끈다. 이 기간에 HP는 무전기, 소나, 레이더, 선박 및 항공 장비를 주로 생산한다.
HP는 경영 방식이 독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42년에는 당시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모든 직원에 대한 건강 보험 계획을 세웠으며, 사무실 디자인도 벽이 없는 오픈 플로어(Open Floor) 디자인을 적용해 직원들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기업 문화는 데이비드 팩커드가 1995년 출판한 회고록 'the HP Way: How Bill Hewlett and I Built Our Company'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the HP Way에 나타난 경영 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우리는 직원 개인을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 2. 우리는 높은 수준의 성취와 기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3. 우리는 타협하지 않는 진실성(윤리)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 한다 4. 우리는 팀워크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5. 우리는 유연성과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
1950년대 들어 HP는 빠르게 성장한다.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단지가 있었던 팔로알토 지역이 발전하면서, 도시를 상징하던 과수원에는 고속도로가 생기고 기업과 연구소가 들어서면서 첨단 기술의 도시가 됐다. 이런 발전에 힘입어 HP는 1957년 11월 6일 기업 공개를 마치고 상장했고, 1961년 3월 17일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1963년에는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일본 기업인 요코가와 전기와 함께 합작회사(YHP, Yokogawa-Hewlett-Packard)를 도쿄에 설립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HP의 제품은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다. 사실 HP는 개인용 컴퓨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HP에 근무하던 애플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워즈니악도 데이비드 팩커드와 윌리엄 휴렛에게 개인용 컴퓨터 개발을 제안했지만, 그들은 과학기술과 산업 시장을 더욱 발전시키길 원했다. 실제로 HP가 60년대 말부터 주력해온 분야는 전자 계산기(1968년 개발한 9100A), 기업용 컴퓨터(1969년 개발한 2116B), 플로터(CAD 도면 출력을 위한 대형 프린터, 1973년 개발한 9862A) 등이었다.
결국 스티브 워즈니악은 HP를 떠나고,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설립한 뒤 1976년 애플1 컴퓨터를 내놓는다. HP가 개인용 컴퓨터 HP-85를 내놓은 것은 이보다 늦은 1980년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아직 이르다는 그들의 판단과 달리 사무용 시장에서 제법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82년에는 HP-86, 1983년에는 HP-150, 1984년에는 HP-110 노트북 등을 잇달아 출시한다. HP의 PC 제품군은 여전히 사무용 기기로 사랑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2014년 HP는 미국 PC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레노버에 이어 2위에 차지하고 있다.
HP는 애플 창업자들과 제법 인연이 있었다. 1968년 스티브 잡스는 고주파 측정기를 만들던 중, 재료가 부족하자 윌리엄 휴렛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남는 부품이 있으면 달라고 요청한다(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번호를 찾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의 진취성에 감명받은 윌리엄 휴렛은 여름 동안 HP의 주파수 측정기 조립 라인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에서 당시를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1971년 여름 HP에 방문했고, 이 기간에 HP에서 근무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 친분을 쌓는다.
<애플1 컴퓨터 앞에 있는 스티브 잡스(오른쪽)와 스티브 워즈니악(왼쪽) <출처: computerhistory.org>>
1993년 데이비드 팩커드가 HP 의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면서, 휴렛과 팩커드는 모두 은퇴한다. 이미 70대 후반의 나이로 더 이상 기업을 경영하기에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데이비드 팩커드와 윌리엄 휴렛은 각각 1996년과 2001년, 83세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약 70여년 전 두 젊은 대학생이 작은 차고에서 세운 회사는 벤처 기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전히 좋은 사례로 남아있으며, 그들의 독특한 기업 문화와 경영 방침은 21세기의 경영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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